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은 11월 28일(목)에 초청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은 바딤 슬랩첸코 박사(서울대학교)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북한 연구를 전문으로 하고 현재 주일미군부대에서 근무 중인 미야츠카 수미코 박사(테이쿄과학대학)가 발표자로 소개되었다.

미야츠카 박사는 광주 출생으로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명지대학교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그의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의 일본 정착과정에서의 정치적·사회적 요인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목표로 한다.

미야츠카 박사는 2021년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역사적인 사건을 언급하며 연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일본 법정 사상 최초로 북한 정부와 김정은 위원장을 피고로 한 재판으로, 5명의 탈북자들이 귀국사업에 속아 북한으로 이주한 이후 겪은 피해에 대해 5억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다. 이 재판은 귀국사업의 본질, 북한 정부의 권유 행위, 일본에서의 선전 활동, 그리고 북한에서의 생활 여건과 관련된 인권 침해를 다루었다. 특히, 일본 법원은 어떤 주체가 관할권을 가진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그리고 소멸시효 문제 등을 논의했다.미야츠카 박사는 언론 보도, 선행연구, 문헌 조사, 구술사 연구를 활용하여 탈북자와의 인터뷰, 귀국사업소 및 재판 방청, 변호사단의 공개 자료 분석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약 25년간 진행된 귀국사업을 통해 재일 조선인 약 93,000명과 1,800여 명의 일본인 배우자가 북한으로 이주했다. 이 사업은 북한 정부와 일본 적십자, 그리고 일본 정부의 협력으로 인도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북한의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아 많은 이들이 빈곤과 차별을 피해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북한의 열악한 생활 환경은 “지상낙원”이라는 약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1심에서 2021년 도쿄지방법원은 귀국사업과 관련된 소송에서 북한의 권유 행위는 사실과 다른 선전으로 판단했으나, 소멸시효 문제를 들어 배상 청구를 기각하였다. 일본 법원이 북한 정부를 피고로 설정하고 사건을 심리한 것 자체는 큰 의미를 가졌으나, 법적 관할권 및 배상 책임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 되었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도쿄고등법원은 귀국사업과 관련된 일본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하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환송하였다. 재판부는 귀국사업의 권유 행위와 북한에서의 유치 행위를 “하나의 연속적인 불법 행위”로 간주하며, 일본 내 법적 관할권이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북한에서 충분한 생활조건을 보장한다며 이주를 요구했지만, 실제로는 물자가 부족하고 원고들은 시민적 자유가 제한돼 출국이 불허용되는 상황에서 장기간 생활했음을 인정했다. 또한, 원고들이 가혹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빼앗기는 손해가 생겼다고 언급하고, 북한에 남은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재에도 손해가 계속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 법원이 북한 정부의 행위에 대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향후, 환송심은 도쿄 지방 법원에서 심리된다. 이는 고등법원의 판단에 구속되기 때문에 북한 정부에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원고 변호사단 대표는 배상이 인정되면 일본 국내에 있는 북한의 재산의 압류를 검토하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 청구 소송은 오토 웜비어 사건과 관련된 민사 소송과 같은 미국의 선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미야츠카 수미코 박사는 탈북자 원고들의 북한에서의 생활, 탈북의 어려움 및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아픔에 대한 증언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판결을 평가하며 귀국사업에 연관된 북한과 일본 정부, 일본의 언론, 그리고 적십자 등 국제기구의 책임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 내 언론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내보냈으며, 일본 정부도 사업을 묵인하거나 공조했다는 비판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미야츠카 박사는 귀국사업에는 일본에 법적관할권이 있다고 결론지었으며, 여기에는 ‘시효’ 등의 시간 문제가 관건임을 지적하였다. 현재까지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와 달리 탈북자들에게 특별한 지원제도 없으며, 난민제도 없는 일본에서는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현실을 설명하며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바딤 슬랩첸코 박사는 사할린 거주 한인을 대상으로 5-60년대에 마찬가지로 ‘귀국 사업’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질의응답을 시작하였다.

고가영 박사(서울대학교)는 소련 시절 북한으로 갔다가 돌아온 소련 국적의 사람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의 경우에는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 무국적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돌아온 사람들의 통계는 어떻게 되는지 질문했다. 이에 대해 미야츠카 박사는 무국적자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여,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귀국 사업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수는 대략 200명인데, 이 또한 추정치이며, 일본 정부는 정보 공개 요청에도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또한, 고 박사는 한국에서도 남북 관계가 우호적이었을 때 북한 손해배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다가, 관계가 악화되자 이 재판에 소송을 걸 수 있었음을 지적하며, 일본에서도 귀국 사업에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유사한 북-일 정치적 관계의 영향이 있었는지 질문했다. 미야츠카 박사는 일본 정부와 북한 정부 모두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코멘트를 하지 않았음을 설명했다.

이후, 바딤 슬랩첸코 박사의 질문으로 일본 난민 인정 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다. 일본은 1970 후반부터 베트남 전쟁 종결 전후로 인도차이나 삼국의 ‘보트 피플’ 1만명 이상을 수용했고, 이 계기로 1981 난민 조약에 가입했다. 이후 일본은 2010년에 제3국 정주 난민수용을 개시하여, 난민 캠프에 사는 사람을 연간 약 30명 수용했다. 하지만 일본의 난민신고자와 인정자 간 비율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일본에서는 난민 인정의 실무를 출입국 재류 관리청이 담당하는데, 난민을 ‘보호한다’ 보다 ‘관리한다/단속한다’는 시점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실태이다. 탈북자 문제는 일본 난민지원제도와 별개로 바라보아야 하는데, 탈북자는 난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귀국사업에 관련된 본인과 직계가족에 한하여 인도적으로 입국을 허용한다.

이후 미야츠카 박사는 실제 원고 및 자손들과 실제 만난 경험담을 공유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