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행 이주 급감… 중앙아시아인들의 새로운 진로
슬랩첸코 바딤 (아시아연구소)
러시아로의 이주민 유입이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영구 이주와 관련된 지표에서 이러한 추세가 두드러진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경제학부 인구통계연구소의 올가 추디놉스키흐 소장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러시아 시민권 취득자 수가 108,1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했다. 러시아 시민권 취득자의 국적별 분포를 보면, 타지키스탄 출신이 42%(45,200명)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서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이 각각 10%(약 11,000명), 아르메니아가 9%(9,700명)를 기록했다.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각각 6%(6,000명)와 5%(5,700명)를 차지했다.
이러한 감소세는 개별 국가 통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카자흐스탄의 사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카자흐스탄 국가전략기획개혁청(Агентство стратегичесĸого планирования и реформ Казахстана)과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로의 이주민 수가 2019년 39,774명에서 2023년 11,737명으로 급감했다. 2000년에는 무려 108,724명이 러시아로 이주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이다.
영구 이주뿐만 아니라 단기 노동이주의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러시아가 거의 독점했던 중앙아시아 노동이주 시장에서 새로운 목적지들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러시아 대신 한국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의 높은 임금 수준 때문만이 아니다. 현지 고려인 공동체의 존재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진출로 인해 형성된 문화적 유대감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앙아시아 이주민들의 서유럽 진출도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영국은 중앙아시아 각국에 수천 명 규모의 농업 분야 단기 취업 비자 쿼터를 배정했다. 독일의 경우 제약산업 분야에서 우즈베키스탄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터키도 중앙아시아 이주민들의 주요 목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들이 언어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터키로 이주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수만 명에 달한다.
노동이주의 방향이 다양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학 목적지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중앙아시아 학생들에게 러시아는 가장 선호되는 유학 대상국이었다. 러시아어 구사능력과 소련 시대부터 이어져 온 교육 시스템의 연계성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이 바뀌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유학 목적지를 찾고 있다. 그중에서도 말레이시아가 중앙아시아 학생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고 영국에서 인정되는 학위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특히 현지 대학의 교육비가 모스크바 대학보다 저렴하다는 점이 중앙아시아 유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처럼 중앙아시아의 이주 패턴이 다변화되면서, 러시아 중심의 단일한 이주 경로가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고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젊은 세대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새로운 국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주요한 요인이 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이 연루된 테러 사건이 잦아지면서 이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아시아인들에게 새로운 이주 기회가 열리면서, 더 이상 러시아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글로벌 노동시장의 변화와 각국의 이민정책 다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