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이주 제안, 아랍 국가의 대대적 반발 촉발
황의현 (아시아연구소)
2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200만 명에 달하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을 이집트와 요르단으로 이주시키고 가자지구를 미국의 주도 아래에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가자지구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하마스 통치로부터 팔레스타인인을 구하려면 완전한 재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중동의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또한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유’할 것이며며 이주 작업을 위해 가자지구에 미군이 주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트럼프의 제안을 지지했고, 2월 17일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발적 출국을 담당할 기관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트럼프의 계획을 현실화하려는 모습이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온 아랍 국가는 즉각 반발했다. 이집트와 요르단 모두 팔레스타인인을 강제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발표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성명서를 통해 유대인 정착, 이스라엘의 영토 합병, 팔레스타인인 강제 퇴거 등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도 트럼프의 계획에 반대했다.
2025년 2월 11일 만난 트럼프 대통령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2월 11일 요르단 압둘라 2세 국왕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아동 2,000명은 치료를 위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고, 트럼프도 마국의 원조를 이집트와 요르단이 팔레스타인인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중동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원조를 받는 국가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트럼프에 별도로 가자지구 재건안을 제시했고 트럼프도 이에 만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2월 21일에는 한 발 더 물러서서서 계획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제시한 것일뿐 계획을 강제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아랍 정상들은 3월 4일 미국에 제시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긴급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집트는 3단계에 걸쳐 약 5년 동안 가자지구를 재건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1단계에서는 먼저 파괴된 건물 잔해를 처리하고 이동식 주택과 임시 거처를 건설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수용해 긴급 구호를 제공한다. 2단계에서는 구체적 재건 계획을 수립해 국제사회에 공개하며, 3단계에서는 본격적인 재건이 착수되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위한 정치적 과정이 시작된다. 재건 과정을 관리할 주체로 팔레스타인 전문가와 가자지구 지역사회 지도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나, 하마스의 참여는 허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건에 필요한 5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은 이집트가 주관할 국제 회의를 통해 국제사회의 원조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걸프 국가가 자금 조달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나, 다시 이스라엘이 파괴할 기반 시설을 재건하기 위해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근본적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랍 국가의 재건안 앞에 남은 과제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하마스의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랍 국가의 계획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측이 가자지구을 관할하는 것에 반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하마스의 반응 역시 관건이다. 하마스의 완전한 소멸을 추구하는 이스라엘과 저항을 멈추지 않을 하마스의 대립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가자지구 주민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할 방안이 합의되지 않은 채 제시된 재건안은 또다른 공허한 약속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