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장벽 앞에서 끊어진 우크라이나와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길

최아영 (아시아연구소)

도널드 트럼프 제47대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2025년 1월 20일 <미국 난민 수용 프로그램 재조정(Realigning the United States Refugee Admissions Program)>이라는 명칭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난민 수용 프로그램(USRAP)은 중단되었고, 난민 입국은 미국의 국익과 국가 안보에 부합되도록 재조정된다. 이 조정안은 90일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미국 입국도 차단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으로 2022년 4월 바이든 전 대통령이 도입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프로그램인 ‘Uniting for Ukraine’이 무기한 중단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재정 후원자가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최대 2년간 미국에 거주하며 노동 허가를 신청할 수 있었다. 난민 수용 프로그램(USRAP)에 따른 입국이 아니었기에 영주권이나 국적 신청은 불가능했지만, 이를 통해 2023년까지 약 15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미국에 입국하여 임시로나마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번 행정명령은 오랜 기간 미국 입국을 준비해 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도 깊은 절망감을 안겼다. 이들은 대다수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 미군을 위해 일했거나 국제기구에서 근무했던 사람들로, 아프가니스탄과 인근 파키스탄에서 숨죽이며 지내면서 미국 입국 승인을 기다려 왔다. 이들 중 일부는 오랜 기간 복잡한 절차를 거쳐 미국 정부로부터 합법적으로 최종 입국 허가를 받은 후 미국행 항공권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1월 20일 행정명령이 서명된 이후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미국행은 무산되었다.

한편, 다수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거주하는 파키스탄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과 관련하여 자국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비자는 기존 6개월 단위에서 매월 연장해야 하도록 변경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으로의 강제 송환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중에는 미군, 국제기구, NGO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이 자국으로 송환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위험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동안 미국의 난민 수용 인원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으나, 바이든 정부 들어 증가하여 2024년에는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또한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지원을 점차 축소하며, 난민 수용 규정을 더욱 강화한 신 이민·난민 협정을 승인했다. 캐나다 역시 2021년부터 2024년 말까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약 5만 5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받아들였으나, 현재는 더 이상 이들의 입국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쟁과 박해를 피해 자국을 떠난 우크라이나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여정은 곳곳에서 벽에 부딪히면서 그들의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