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공유하는 외국 인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러시아

슬랩첸코 바딤(아시아연구소)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로부터 이주하는 전문가들과 인재들을 위한 특별 이민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민 정책은 전통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외국인들이 러시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로, 외국인들이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임시 거주 허가(РВП)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러시아 법률에 따르면 외국인 체류는 임시 체류, 임시 거주, 영주 이렇게 세 가지 법적 상태로 구분된다. 임시 체류는 비자 유효 기간에 따라 정해지며, 임시 거주 허가(РВП)는 매년 러시아 정부가 승인하는 쿼터 내에서 외국인에게 발급되고 유효 기간은 3년이다. 카자흐스탄, 몰도바, 우크라이나 국민과 러시아 동포 재정착 국가 프로그램 참가자 등 일부 외국인은 쿼터 제한 없이 임시 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허가를 취득한 외국인은 별도 노동 허가 없이 취업할 수 있고, 사업체를 설립할 권리가 있으며, 의료보험 혜택과 자유로운 국경 출입이 가능하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임시 거주 허가를 기반으로 1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은 영주권(ВНЖ)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

전략구상청(ASI, Agency for Strategic Initiatives – 러시아의 경제·사회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정부 기관)의 스베틀라나 추프셰바 청장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 출신 599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 임시 거주 허가를 신청했다. 이처럼 현재까지 이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로 러시아로 이주한 외국인은 수백 명에 달하며, 계속해서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러시아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하려는 정책의 일환이다.

이 제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23년 8월에 서명한 대통령령 702호에 근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정책의 발단은 이탈리아 출신 학생인 이레네 체키니의 제안이었다.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교(МГИМО)에서 유학 중이던 체키니는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에서 살 시간(Time to Live in Russia)’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녀는 러시아의 전통 가치를 존중하는 외국인들이 행정적, 관료적 장벽 없이 러시아로 이주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이에 푸틴 대통령은 상기 대통령령에 서명한 후, 전략구상청과 내무부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포괄적으로 개발하도록 별도 지시를 내렸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러시아 정부가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로 지정한 47개국, 즉 러시아가 ‘비우호적 국가’로 간주한 나라의 출신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미국, 영국, 체코, 일본, 한국 등이 포함된 이 국가들은 전통적 가치와 충돌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러시아가 판단한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이들 국가에서 자국의 이념과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러시아가 추구하는 ‘임파트리안트(импатриант)’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러시아 당국은 이 용어를 일시적으로 체류하다 떠나는 ‘주재원(expat)’과 구별하여, 러시아에 장기적으로 정착하고 가족과 함께 살면서 러시아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외국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전략구상청은 러시아가 특히 IT, 생명의학, 창의 산업 분야의 전문가와 기업가들을 유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은 매년 최대 30만 명의 고숙련 이주자를 받아들이고, 중국은 약 40만 명의 외국 전문가를 유치하고 있다. 러시아도 이러한 글로벌 인재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특별한 점은 단순한 경제적 이주가 아닌 ‘가치 지향적’ 이주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통적 가족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인재를 우선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로 이주한 외국인들은 안전과 자녀 교육의 미래를 이주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전략구상청은 이주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포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는 법적 지위 취득 지원, 주택 찾기, 취업 지원, 자녀 교육 지원, 러시아어 교육 등이 포함된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이민 정책을 넘어, 러시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가 말하는 ‘전통적 가치’란 다자녀 가정, 자유와 책임, 사회적 공헌, 복지와 정의를 포함한다고 푸틴 대통령은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가 “더 공정한 발전 모델, 확고한 가치에 기반한 모델 형성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독특한 이민 정책이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과 인구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