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와 산업화가 바꾸고 있는 러시아 북극 순록 유목민의 삶: 야말-네네츠 자치구의 현실

최아영(아시아연구소)

야말-네네츠 자치구 토착민족인 네네츠인

러시아의 서시베리아 북부에 위치한 야말-네네츠 자치구(Yamalo-Nenets Autonomous Okrug)는 대부분의 지역이 북극권(Arctic Circle)에 속해 있다. 행정중심도시인 살레하르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북극권에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다.

‘야말’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야말’은 이곳에서 대대로 순록 유목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토착민족 네네츠인의 언어로 ‘땅의 끝’을 뜻한다. 실제로 이 지역은 러시아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북극해의 일부인 카라해와 인접한 대표적인 극지방 중 하나이다.

오랜 세월 순록과 인간이 공존해 온 야말-네네츠 자치구는 1960년대 가스전 개발이 시작된 이후 현재 보바넨코보, 우렌고이 등 러시아 최대 규모의 가스전이 밀집된 지역으로, 러시아 전체 천연가스의 8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동시에, 약 65만 마리의 순록이 사육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순록 유목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전통산업인 순록 유목과 현대 산업인 천연가스 개발이 공존하는 야말-네네츠 자치구에서는 서로 다른 형태의 인구 이동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노동력이 대규모 가스 산업단지로 유입되고 있어서 러시아 북극 지역으로는 드물게 인구가 감소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 개발로 인해 목초지가 점차 줄어들고, 도로와 파이프라인 등 각종 기반시설이 순록의 이동을 가로막으면서, 일부 순록 유목민들은 유목을 포기하고 인근 마을이나 도시로 이주해 정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노바테크의 Yamal LNG 액화천연가스 플랜트

여기에 더해,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는 순록 유목을 가능하게 해온 자연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며, 유목민들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데 점차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 야말-네네츠 자치구가 위치한 북극 지역은 전 지구 평균보다 약 4배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은 일상 깊숙이 침투한 현실이 되어버린 기후 변화가 주는 위협을 체감하고 있다.

우선 겨울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겨울철 기온도 상승하고 있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관측된 야말-네네츠 자치구의 2월 평균 기온은 –22°C에서 –26°C 사이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밤에도 기온이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로 인해 얼어붙은 강을 따라 조성되던 겨울철 임시도로인 ‘짐니크’(zimnik)를 이용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얼음이 단단히 얼지 않아 도로 개통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주민들의 이동성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식량, 연료, 생활필수품 등의 운송과 공급에도 큰 차질을 초래한다.

동절기 기온 상승은 인간의 이동성만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 임시도로 ‘짐니크’는 야말지역의 순록 떼가 여름철 툰드라 지대에서 겨울 방목지로 이동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유목민들은 완전히 얼지 않은 강과 호수를 건너 순록 무리를 이동시켜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지구 온난화로 인해 겨울철 강우가 잦아지면서 순록의 주요 먹이인 지의류 위에 단단한 얼음층이 형성되어 순록들이 먹이를 먹을 수 없게 되어 집단 폐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충분히 얼지 않는’ 북극의 기후 변화로 인해 지의류의 서식 형태가 바뀌고, 영구동토층이 융해하며 토양이 습지화되거나 기반 침하현상이 일어나 순록의 목초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후변화와 산업시설로 인한 목초지 부족 문제는 결국 순록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야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순록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유목민들도 전통적 생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서 툰드라를 떠나 인근 마을이나 도시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야말-네네츠 자치구에서는 아직까지 기후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본격적인 이주의 조짐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 나타나는 이주는 기후적 요인 외에도 전통적인 생업을 떠나 보다 편리한 삶을 추구하려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는 북극권의 야말-네네츠 자치구의 순록유목민들은 그 영향을 이미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다. 이들은 지구온난화와 산업화로 인해 열악해지는 환경에서도 대대로 이어온 생업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독특한 공동체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지켜내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가 더욱 심화된다면, 이들 역시 생존을 위한 ‘이동’이라는 선택 앞에 놓일 가능성은 점차 현실이 되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