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하지 않은 영구동토층: 야쿠티야 원주민이 마주한 기후 위기

슬랩첸코 바딤(아시아연구소)

지난 10월 23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이주·난민연구단과 HK+ 매가아시아연구사업단이 공동 주최한 세미나(교육프로그램) ‘영구하지 않은 영구동토층: 야쿠티아 농촌 공동체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도전’이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러시아 북극 지역의 기후변화가 원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기후 위기와 이주 문제의 연관성을 조명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원주민’이란 러시아에서 ‘북방 소수민족(КМНС)’으로 분류되는 소수민족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주로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 거주하며 인구가 5만 명을 넘지 않는 민족들이다. 야쿠티야 공화국에는 에벤키족, 에벤족, 유카기르족, 돌간족, 축치족, 응가나산족 등 6개의 북방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발표자로 나선 뱌체슬라프 샤드린(Vyacheslav Shadrin)은 러시아 사하공화국(야쿠티야) 원주민 부회장이자 유카기르족 원로회의 의장,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 지부 원주민 문제 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원주민 공동체 지도자이자 연구자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그는 야쿠티야의 기후변화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샤드린은 발표 초반 “우리는 우리 땅의 일부이며, 땅의 작은 티끌”이라는 표현으로 원주민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했다. 야쿠티야 원주민들은 수세기에 걸쳐 축적한 전통 지식을 통해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해 왔으며, 그들에게 날씨를 예측하는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암담하다. 현지 주민들은 “더 이상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 “동물들의 행동이 변했다”, “날씨가 우리를 속인다”고 증언한다. 수천 년간 쌓아온 전통 지식이 급격한 기후변화 앞에서 무력해진 것이다.

샤드린은 18-19세기 전환기에도 급격한 기후변화가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당시 어류의 대규모 감소, 순록의 대량 폐사 등이 발생했고, 이는 야나강, 인디기르카강 등 유역에 거주하던 다수의 유카기르족 공동체가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현재 야쿠티야가 직면한 위기는 과거보다 훨씬 심각하다. 영구동토층 해빙은 원주민 생활의 모든 영역을 위협하고 있으며, 자연재해가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 8년간 콜리마 분지에서만 대규모 홍수가 5회 발생했고, 알라제야 강 유역에서는 장기적인 여름 홍수로 여러 마을이 침수됐다. 2021년에는 야쿠티야에서 1,200만 헥타르 면적을 태운 산불이 발생했으며, 이제는 툰드라에서도 화재가 발생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순록 유목민들의 전통 생업 기반의 약화도 심각하다. 순록 사육은 목초지 감소, 야생 순록 이동 경로 변화, 예측 불가능한 날씨 등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새끼 순록의 질병과 폐사율이 증가했는데, 특히 해빙 시기가 빨라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4월에 태어난 새끼 순록을 여름 목초지로 이동시킬 때 과거에는 얼음 위로 강을 건널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해빙이 일찍 시작되어 순록들이 강을 헤엄쳐 건너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새끼 순록들이 차가운 물에 노출되어 질병에 걸리고 폐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늑대와 곰의 공격도 늘어났다. 이로 인해 순록 사육자 수가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매머드 유골(상아) 수집으로 생계를 전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통 산업에 종사할 인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며, 순록 사육, 어업, 수렵과 같은 전통적 생업 방식의 존속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원주민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원주민들의 전통적 신앙에서 매머드는 저승 세계의 순록으로 여겨지며, 그 유골을 훼손하는 행위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매머드 유골 수집은 단순히 경제 활동의 변화를 넘어 수천 년간 이어온 정신적 가치 체계를 위협하는 문화적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어업 분야에서는 강과 호수 연안 침식으로 어업 시설이 파괴되고, 수면 온도 상승으로 어류가 깊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기존 어업 도구로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지역들이 발생했다. 결빙·해빙 시기의 변화는 얼음 낚시에 큰 영향을 미쳤고, 얼음이 충분한 두께로 얼지 않아 안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수렵 역시 동물 이동 경로와 시기의 변화, 산불 증가로 사냥터 이용이 불가능해지는 등의 문제에 직면했다.

주민들의 건강과 주거 안전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영구동토층 해빙으로 오래된 묘지와 매장지가 파괴되면서 페스트, 천연두, 탄저병 등의 병원체가 노출될 위험이 있고, 화재 연기 지속으로 호흡기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강과 호수 연안 침식 심화, 말뚝 위 주택 파손 증가, 겨울 도로 운영 기간 단축, 비행장 폐쇄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하공화국 정부는 강과 호수 연안 보강, 이주 프로그램, 건물 말뚝 표준 상향 조정, 2018년 ‘영구동토층 보호법’ 제정 등 다양한 적응 조치를 시행 중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샤드린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곳에 살았고, 많은 것이 변했으며, 조상들은 항상 해결책을 발견하고 적응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적응의 기반은 언제나 우리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땅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우리 땅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구동토층은 단순한 동토가 아니라 야쿠티야 생태계와 원주민 삶의 토대였던 것이다. 샤드린의 발표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온도 상승의 문제가 아니라, 원주민 공동체의 정체성과 생존, 수천 년의 전통 지식 체계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이번 세미나는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문제인 동시에 특정 지역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임을 상기시켰으며, 러시아 툰드라 지역의 기후 이주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의 계기가 됐다.